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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바람, 절망의 사막을 지나다

 

1. 절벽 끝에서 시작된 시련

 

저희 가족이 미국에 정착한 지 겨우 1년 남짓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잠시 고국을 방문했다가 어린 딸아이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소록도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남해고속도로 한복판, 평화롭던 길 위에서 저희는 순식간에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쾅—!'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뒤따라오던 1톤 화물차가 저희 승용차를 거세게 들이받았습니다. 차 트렁크가 흔적도 없이 찌그러질 정도의 대형 사고였습니다. 다행히 당장은 눈에 보이는 큰 외상이 없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것은 더 큰 폭풍우가 몰려오기 전의 거친 정적일 뿐이었습니다. 미국 돌아갈 비행기 일정에 쫓겨 서둘러 LA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하늘 위에서 진짜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딸아이가 사고 후유증으로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비행기 통로에 쓰러졌고, 집사람인 Master Kim 역시 비행기 의자에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하며 함께 쓰러졌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승무원의 배려로 1등석 빈자리에 두 사람을 겨우 누인 끝에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어린 딸은 금방 회복했지만, 정작 Master Kim의 몸과 영혼은 그때부터 시름시름 시들어갔습니다. 밤낮없이 침대에 누워 지내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제가 기(氣)를 모아 치유해 주면 잠시 기운을 차리는 듯하다가도, 이내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듯 다시 쓰러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겪는 모든 경험은 죽은 후에도 영혼에 남아 천국이 되기도, 지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매 순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입니다."

 

평소 수련원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우리가 늘 전하던 설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몸 하나 일으키지 못하고 침대에 갇혀버린 현실 앞에서, 저희는 깊은 절망과 함께 "우리가 걸어온 길이 과연 옳았던 걸까?" 하는 거대한 회의감과 정체성의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65kg이던 Master Kim의 몸무게는 불과 6개월 만에 54kg까지 빠졌습니다.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조차 넘기기 힘겨워했고, 그 얼굴에는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

가혹하게도 의료보험조차 없던 타국 땅에서, 단 한 번의 진단비조차 부담스러웠던 저희는 그저 기치유에 의존하며 피말리는 시간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련원과 기치유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 벼랑 끝에서, 산타모니카에 사는 한 교포의 소개로 유태인 부부가 저희를 찾아왔습니다. 남편분은 교사였고, 아내분은 신생아를 돌보는 간호사였습니다. 몸이 워낙 예민했던 아내분은 몸에 손을 대지 않는 기치유를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남편분을 치유해 드렸고, Master Kim이 하루 종일 누워 지내던 몸을 이끌고 그 부인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치유가 끝난 후, 부인이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몇 년 동안 어깨에 담이 든 것처럼 아팠는데, 기치유를 받는 순간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휙 하고 빠져나가면서 완치되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뒤로 두 번째 방문부터는 종이를 달라고 하여 그날그날 느낀 치유 과정을 기록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감고 치료를 받을 때 어떤 날은 회오리처럼 거대한 기운이 들어왔고, 어떤 날은 빛이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고 하셨습니다. Master Kim의 손길을 따라 황금색 빛이 온몸을 감싸는 것을 보았다며 그림까지 그려가며 기록해 주셨습니다.

비록 지금 우리의 몸은 힘들고 아플지라도, 우주가 가진 치유의 기운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수련원을 계속 유지하라는 하늘의 메시지처럼 느껴진 따뜻한 응원의 순간이었습니다.

 

2. 기적의 재회, 그리고 뜻밖의 진단

 

그러던 중, 한국 지리산에 계시던 한 인연이 저희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선뜻 Master Kim을 위한 한국행 비행기표를 구해주셨습니다. 그렇게 Master Kim은 요양을 위해 홀로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한국에서 몸을 추스르며 산책을 하던 어느 날, Master Kim은 과거 마라톤을 함께 뛰었던 오랜 지인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뼈만 남은 Master Kim의 모습을 보고 놀란 그분은, 망설임 없이 Master Kim을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끌고 갔습니다. Master Kim의 상태를 확인한 의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곧바로 상급 종합병원인 한림병원 응급실로 전원 조치를 내렸습니다.

 

재검진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병명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

사고의 충격으로 갑상선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온몸의 대사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온몸의 장기가 버티지 못하는 '갑상선 위기'로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지금 당장 가장 강한 약을 하루 2알씩 복용하셔야 합니다. 어쩌면 평생 약에 의존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2주간의 긴급 치료를 받고, 6개월 치의 약을 가슴에 품은 채 Master Kim은 다시 LA로 돌아왔습니다. 원인을 알았으니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습니다.

 

Master Kim은 약물 치료와 함께 Ki-Sun 수련, 그리고 천수(기치유)를 병행했습니다. 체력이 바닥나 비틀거리면서도 LA 코리아타운 거리를 몇 시간씩 걸었고, 기혈을 푸는 운동을 단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3. 맑은 영혼을 가진 인연, 그리고 카르마의 해탈

 

기혈을 푸는 운동을 이어가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미세스 최'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의 소개로 기 에너지를 눈으로 볼 만큼 영감이 발달한 그녀의 언니 '미세스 송'이 저희 수련원을 찾아오셨습니다.

미세스 송은 거실에 앉아 계시면서도 수련실 안에서 다른 사람을 기치유하면서 “쉭”하는 휘파람 소리를 들어면서 치유의 파동이 자신에게까지 밀려오는 것을 느꼈고, 그녀가 직접 기치유를 받는 순간 거대한 우주의 기운이 온몸으로 흘러 들어와 치유되는 것을 체험하며 감탄하셨습니다.

 

곧바로 Ki-Sun 수련을 시작하신 그분은 천문 챈팅(Chanting) 속에서 에너지가 조율되는 것을 느끼셨고, 수련원의 '일원상' 심벌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기운을 내뿜으며 움직이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저희는 그분에게 조상 카르마와 해탈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조상님의 업보와 질병, 카르마는 후손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24일간의 진심 어린 기도를 통해 조상님의 한을 풀어드리면, 하늘의 문이 열리고 영혼은 원래의 고향인 낙원으로 천도됩니다."

 

성경 속 조상의 죄와 구원의 메시지를 떠올린 미세스 송 님은 흔쾌히 조상 천도식을 시작하셨습니다. 기도가 진행될수록 늘 어둡고 피곤해 보이던 조상님들의 형상이 점차 밝고 맑게 변해갔습니다. 마침내 24일째 되던 날, 미세스 송 님은 눈물을 흘리며 고백하셨습니다.

 

"일원상 심벌 위에 거대하고 찬란한 빛의 문이 열렸어요. 조상님들이 환하게 웃으시며 그 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4. 황야의 땅 필란(Phelan)으로의 여정

 

당시 저희의 삶은 팍팍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경제는 바닥을 쳤고, Master Kim의 오랜 투병으로 센터 운영이 어려워지자 저는 밤마다 콜택시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어느 날 아침, 밤샘 운전을 마치고 피곤에 지쳐 돌아와 쉬고 있을 때 미세스 송이 찾아오셔서 코리아타운에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빅토빌 근처의 필란(Phelan)의 집을 보여주겠다고 하셔서 함께 움직였습니다.

 

"이 집을 맡아 관리해 주시면 집세는 받지 않겠습니다. 매주 부식도 챙겨드릴게요. 1마일 거리에 LA 서부 최고의 명문 중 하나인 고등학교도 있으니 이사 오시는 것이 어떠세요?"

 

그 무렵 Master Kim의 몸은 기적적으로 회복되고 있었습니다. 갑상선 약을 서서히 줄여서 6개월 만에는 아주 미량만 복용해도 될 정도가 되었고, 1년이 지나자 약을 완전히 끊고도 건강한 컨디션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딸 May의 아토피 역시 약의 효과인지, 캘리포니아의 건조한 기후 때문인지는 몰라도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 황량한 하이 데저트(High desert) 시골에 가서 무엇을 하며 먹고살려 하느냐"며 극구 말렸지만, Master Kim은 남편이 야간 운전하는 것을 그만두고, 딸아이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줄 수 있다면 사막이라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곳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희는 가장 큰 화물차를 빌려 필란으로 향했습니다.

 

5. 사막에 세운 수련원, 그리고 영혼의 응답

 

필란에서의 삶은 저희에게 뜻밖에 기회의 땅이 되어주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 수련과 천도식을 세계화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개설할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안겨주었고, 샌디에이고에 있는 'World Beat Center' 출장 기치유를 통해 많은 분과 인연을 맺고 기치유를 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또한 필란 집에 방치되어 있던 대형 컨테이너 2개를 연결한 건물을 직접 수리했습니다. 원목 마루를 깔고 한국 전통 문살의 아름다움을 살린 문을 직접 제작해 달아 아주 근사한 수련실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Master Kim과 딸 May를 모델로, Ki-Sun 수련의 세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수련 동작을 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그러던 중, 노인 병원에 오래 계시던 미세스 송 님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다른 조상님들의 천도식을 흔쾌히 진행했던 그분이셨기에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위한 천도식을 권해드렸으나, 미세스 송 님은 단호하셨습니다.

"다른 조상님들과 달리 어머니는 평생 예수님을 섬기셨으니 당연히 천국에 가셨을 겁니다. 천도식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막내동생 '미세스 최' 님의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한국 전통 제사상에나 올라가는 고사리와 도라지 나물을 들고 찾아오셨습니다.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지도 않던 나물들이었습니다. 셋쨰 동생 남편분의 꿈에도 어머니가 나와 서글픈 눈빛으로 말없이 주저앉아 계셨다고 합니다.

게다가 은행에서 수십 년간 근무하던 둘째 동생 '미세스 서' 님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주일 뒤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청천벽력 같은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영적인 경고음이 울리고 있던 그 무렵, 수련원에 들러 약 30분 정도 참선을 마치고 다른 건물인 거실로 돌아온 영적으로 예민한 '미스 최'라는 분이 물었습니다.

"수련실 앞에 어떤 할머니가 앉아 계시는데 누구세요? 미세스 송과 얼굴 윤곽이 참 많이 닮으셨는데... 수련실 밖에서 계속 기다리고 계셔요."

 

어머니의 영혼이 갈 곳을 찾지 못해 수련실 앞을 서성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둘째 동생 미세스 서는 깊은 깨달음을 얻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Master Seo, 언니만 어머니 천도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둘째 딸인 대신 제가 어머니의 천도식을 올리면 안 되나요?"

 

6. 다시 열린 축복의 문

 

미세스 서는 코리아타운에 필란까지 편도 1시간 반 거리를 매주 오가며, 회사에 나가지 않는 시간을 오롯이 기도로 채우셨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유튜브 라이브 기도를 통해 어머니의 영혼이 카르마를 벗고 빛으로 나아가길 정성으로 기원하셨습니다. 그렇게 24일간의 간절한 기도가 끝난 날, 장내에는 따스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 감돌았습니다. 어머니는 마침내 한을 풀고 빛의 세계로 천도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천도식이 끝난 딱 일주일 뒤, 기적 같은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갑자기 그녀를 해고했던 은행에서 연락이 온 것입니다.

"미세스 서, 사정이 생겼으니 혹시 다시 출근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영문도 모른 채 쫓겨났던 그녀는 거짓말처럼 복직하셨고, 정년퇴직할 때까지 5년 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평온하게 은행 근무를 마칠 수 있으셨습니다.

 

조상님의 한을 풀고 영혼을 빛으로 보낸 정성이, 결국 후손의 가로막혔던 앞길까지 다정하게 열어준 경이로운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Korea Taoist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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